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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멸극(滅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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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하늘이 어두어지고 세상에서 흐르는 시간대와 나의 접촉에 마찰이 생긴다. 오래동안 병마와 시달리다 한겹의 생을 마감하는 냄새가 난다.
그동안 잘 해주던 자식들도 보이지 않는다. 점점 숨결이 가파온다. 그리고 편안한 안식을 얻게 되었고 몸의 아픔도 멈추고 나의 영혼은 그렇게 가고 싶은 자리로 향해 서서히 나아 간다.
한동안 나의 가야할 길을 같다 오니 나의 자식들은 검은 상복을 입고 짖은 향을 피우며 업드리더니 장송곡에 맞추어 산으로 산으로 아무것도 없는 나의 겁데기를 묻어로 가는구나. 주역의 정(貞)의 시간은 생을 마감하는 병(病), 사(死), 장(葬)을 의미한다.
모두들 멸의 시간을 싫어한다. 그래서 나역시 오랫동안 멸극의 컬럼을 쓰지 못했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 엄연히 존재하는것이 멸의 시간대이다. 주역은 이를 "항룡유회(亢龍有悔)라 하였고 공자님의 제자 증자께서도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새는 죽을 때 그울음이 슬프고 사람은 죽을 때 그 하는 말이 착하다.>
이렇게도 죽음을 앞둔 모든이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평등한 직위를 가지는 것이다. 부귀영화를 누린자나 빈곤과 멸시속에서 살아온자나 다같이 한줌의 훍으로 돌아가는 것은 동일하다. 그러면 주역에서는 멸의 시간을 어떻게 맞이하라 했는가? 어떤 지혜로써 이를 극복하라 했던가?
그의 해답은 "빈마지정(牝馬之貞)이다." 암말이 죽음을 맞이하듯 하라는 것이다. 암말은 정말 조용하게 하게 하늘에 순응하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눈동자는 평화롭고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세상을 떠난다.
평화로운 죽음 그자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병원에 노인들이 넘쳐난다. 별로 살아서 할일 없고 살면서도 아픔의 고통을 안고 조금 더 명을 이어가려고 몸부림친다. 여론도 이를 더욱 도와주는 정부를 복지가 잘된 나라라고 한다.
주역의 빈마지정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화두를 주는 것일까?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로마의 마지막 황제 "마아크스 오리얼리스"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오늘 죽지 않고 내일 아니 몇년후에 죽느다고 만족하지마라.
우린 배우다. 무대의 뒷편에 있는 감독이 시키는데로 멋진 연기를 하다가 무대뒤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때 읽은 구절이 머리속에 박혀 나의 영체를 떠나지 않으니 아마도 나역시 허무철학의 본체인 모양이다.
주역은 정의 시절이후의 이야기는 없다.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고 죽음에 이루는 시간까지의 이야기가 전부이다. 이를 무극(无極) 태극(太極) 황극(黃極) 멸극(滅極)으로 구분하였을 뿐이다. 사후의 세계의 이야기가 없다.
천당과 지옥도 없고 부활도 환생의 이야기도 없다. 단지 살아가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지를 가르쳤을 뿐이다. 억지로 사후의 세계를 이야기하라고 하면 죽음의 이후는 "자연에게 맏겨라"라는 정도이다. 정의 시절의 이이야기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으로 끝이난다.
그동안 잘 해주던 자식들도 보이지 않는다. 점점 숨결이 가파온다. 그리고 편안한 안식을 얻게 되었고 몸의 아픔도 멈추고 나의 영혼은 그렇게 가고 싶은 자리로 향해 서서히 나아 간다.
한동안 나의 가야할 길을 같다 오니 나의 자식들은 검은 상복을 입고 짖은 향을 피우며 업드리더니 장송곡에 맞추어 산으로 산으로 아무것도 없는 나의 겁데기를 묻어로 가는구나. 주역의 정(貞)의 시간은 생을 마감하는 병(病), 사(死), 장(葬)을 의미한다.
모두들 멸의 시간을 싫어한다. 그래서 나역시 오랫동안 멸극의 컬럼을 쓰지 못했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 엄연히 존재하는것이 멸의 시간대이다. 주역은 이를 "항룡유회(亢龍有悔)라 하였고 공자님의 제자 증자께서도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새는 죽을 때 그울음이 슬프고 사람은 죽을 때 그 하는 말이 착하다.>
이렇게도 죽음을 앞둔 모든이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평등한 직위를 가지는 것이다. 부귀영화를 누린자나 빈곤과 멸시속에서 살아온자나 다같이 한줌의 훍으로 돌아가는 것은 동일하다. 그러면 주역에서는 멸의 시간을 어떻게 맞이하라 했는가? 어떤 지혜로써 이를 극복하라 했던가?
그의 해답은 "빈마지정(牝馬之貞)이다." 암말이 죽음을 맞이하듯 하라는 것이다. 암말은 정말 조용하게 하게 하늘에 순응하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눈동자는 평화롭고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세상을 떠난다.
평화로운 죽음 그자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병원에 노인들이 넘쳐난다. 별로 살아서 할일 없고 살면서도 아픔의 고통을 안고 조금 더 명을 이어가려고 몸부림친다. 여론도 이를 더욱 도와주는 정부를 복지가 잘된 나라라고 한다.
주역의 빈마지정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화두를 주는 것일까?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로마의 마지막 황제 "마아크스 오리얼리스"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오늘 죽지 않고 내일 아니 몇년후에 죽느다고 만족하지마라.
우린 배우다. 무대의 뒷편에 있는 감독이 시키는데로 멋진 연기를 하다가 무대뒤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때 읽은 구절이 머리속에 박혀 나의 영체를 떠나지 않으니 아마도 나역시 허무철학의 본체인 모양이다.
주역은 정의 시절이후의 이야기는 없다.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고 죽음에 이루는 시간까지의 이야기가 전부이다. 이를 무극(无極) 태극(太極) 황극(黃極) 멸극(滅極)으로 구분하였을 뿐이다. 사후의 세계의 이야기가 없다.
천당과 지옥도 없고 부활도 환생의 이야기도 없다. 단지 살아가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지를 가르쳤을 뿐이다. 억지로 사후의 세계를 이야기하라고 하면 죽음의 이후는 "자연에게 맏겨라"라는 정도이다. 정의 시절의 이이야기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으로 끝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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