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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정한 교육.
동몽 길 
童蒙 吉

< 교육은 자신을 아는 길이다. 자신을 알면 순수해진다. 이것이 주역에서 가르치는 교육의 최종 목적이다.>

쏘크라테스의 철학의 근본은 무지(無知)의 지(知)의 자각(自覺)이다.
" I know that I know nothing. 나는 내자신이 알고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다."

모두 들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고 있는데 쏘크라테스는 이점의 자각이 그를 최고의 철학자를 만든 것이다. 주역에서는 교육의 최종 목적은 그를 순수하게 만드는 것이라 하였다.

자신의 깊게 숨어 있는 본성을 자각 하고 나면 욕심도 다툼도 자연히 끊어진다. 본성을 알고, 상대를 알며, 세상의 흐름을 아는 것이 주역에서 가르치는 목적인 것이다. 이를 인식하면 자연히 어린 소년같이 그의 모습이 진솔해진다. 과연 작금의 우리 교육이 자성을 깨달아라고 어디에 한구절이라도 있는지 찾고 싶다.

나의 삼십대에 골프를 배운 적이 있었다. 소질이 있어서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시절에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나는 그때의 충격은 필설하기도 싫은 정도 이다. 그 마음을 풀기 위해 지리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지리산 중턱에 있는 장수촌에서 하루를 자고 아침 일찍히 노고단을 넘었다. 여행을 하면 맘의 상처가 씻어 질줄 알았는데 더욱 분통이 터졌다. 노고단 중턱을 넘어 씨암재휴게소를 지나면 급경사가 나타난다.

나는 저단 기어를 넣고 천천히 차를 몰았다. 그때 나의 앞에 깡마른 노스님이 걸망을 지고 걸어 가고 있었다. 나는 차를 세우고

" 스님 어딜 가십니까? " 하면서 내려서 타시라고 하였다.

스님께서는 상자가 찾아와서 구래장에 시장을 보려 가신다고 했다. 그것도 콩나물을 조금 사시려... 시암재 고개에서  구래장까지 걸어서 왕복하면 약 다섯여섯시간이 족히 걸린다.

몇백원어치 콩나물을 사시려 일찍이 나선 것이다. 그것도 상자승을 위해서  그런데 스님께서는 조금도 지치거나 서두르는 일이 없으시다. 스님 께서는

"거사님 어딜 가십니까?" 하고 물어시기에

"광양 백운산에 있는 성불사에 갑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노스님께서 우리절에 머물어가라고 했다. 나는 무었에 끌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구래장에서 스님과 같이 콩나물과 함께 능이버섯을 스님도 사고 나도 같이 샀다.

그러니 스님은 걸망속에서 또하나의 걸망을 내어 시장본 것을 모두 넣었다. 나는 내가 산 능이가 조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지리산 씨암재를 다시 올랐다. 차에서 네려 약 삼십분쯤 오르니 상선암이라는 작고 아담한 암자가 나타났다. 나는 가뿐숨을 몰아쉬고 있으니 스님은 웃으면서

"좀 되재"하면서 웃으신다.

그리고 창고에서 자리를 내어 사가지고 온 능이를 잘게 찟어서 자리에 깔고 있었다. 나도 도우니 나의 일하는 모습을 보더니 버럭 화를 낸다. 좀 성의 있게 하라는 아야기 이다.

그때 절에 놀려온 처사님이 같이 거들어 주면서 스님 이야길 하였다. 처사님은 전남대학교 교수라 하였다. 광주에 스님이 오신일이 있어서 같이 식당에 갔는데 식사를 마친후에 스님의 코가 빨개져서 왜 그런가 물으니 마늘이 들어가서 그렇타 한다.

한번도 마늘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이다. 그 교수님도 이렇게 청정한 스님은 더물다고 하면서 존경의 말을 계속하였다. 나는 그날 밤 스님과 함께 상선암에 머물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불교이야기 참선의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오직 같이 지내는 일 밖에 없었는데 나의 맘은 그렇게 편할수가 없었다.
 
다음날 내가 떠나려고 하자, 말린 어제의 능이 버섯을 모두 싸 주시면서 집에가거던 무우와 소고기를 조금 넣어서 국을 끊여 먹으시게, 나는 중이 되어서 소고기를 먹질 못하지만  능이는 소고기와 무우를 넣어야 궁합이 맞다고 하신다.

나는 내가 산 능이를 모두 합할 때 일어난 내물건을 뺏기는 욕심의 맘이 너무나 미안 했다. 떠날 때까지 스님은 부처님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냥 미소로 잘 가라고만 하였다.

스님과 헤어지면서 내가 가진 분노를 모두 지리산에 버리고 온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이 평온해 질수가 없었다.

이후에 시간이 허락 할 때마다 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한번도 주지승을 한적도 법상좌에 앉아 본 일도 없다고 한다. 오직 스스로의 길을 걸어면서 일생 승려로써 살아 왔을 뿐이다. 나는 여행을 즐겨서 이름난 스님들을 많이 친견해 보았다. 많은 설법도 들었고 생활의 모습도 보아왔다.

그러나 지리산 노스님만큼 맘의 평온을 주신분이 없었다.

한마디의 불교 이야기도 없었고 어떻게 살아라는 훈도도 없었지만 맑은 미소가 모든 것을 나에게 전달하시는 힘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마치 어린애같은 그의 행동에서도 조금도 헛트러짐이 없었고 스님의 곁에 있으면 평화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어디에서 온 힘일까?

이것이 동몽의 모습일 것이다. 자신을 알고 스스로 순수해지는 자기 성찰이 주역에서 지향하는 최고의 교육이다.

지금의 젊은 이는 직장을 찾아 직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고 그리고 영원히 안정된 자기 삶을 만드려고 밤낮을 달린다.

과연 그것이 참교육일까?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길일까?

그런 생활에서 모은 돈으로 화려한 옷차림으로 거들먹거리는 것을 최고의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참된 삶일까?

내가 잘못일까.

나의 생각이 나의 사상이 쾌쾌묵은 것은 아닌지 그런 삶속에 묻혀사는 내자신이 정영 동몽의 지혜는 잊은 것이 아니지 생각하면서 아침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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